브랜드스토리

핑 역사관
핑역사관
1960s
혁신의 시대 1959 - 1969
골프 산업에 GE의 기계공학 엔지니어였던 카스텐 솔하임의 등장을 알리는 첫 신호가 울렸다.
그의 첫 퍼터인 1-A는 퍼팅에서의 좌절에 자극받아 자신만의 클럽을 디자인하겠다는 생각으로 차고에서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 퍼터는 단지 그의 퍼팅만을 향상시킨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골프브랜드의 이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카스텐 솔하임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퍼터로 스트로크를 하면 "피~잉"(PINNNGGG) 하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었고 완벽한 성능을 갖고 있었다.
1992
PING 1-A Putter

PING 1-A Putter "나는 볼을 10번쯤 치고는 그냥 걸어 나와 버렸다." 42세의 카스텐은 회상했다.
"나는 제대로 볼을 칠 수 없어서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카스텐은 뉴욕 이카카에 있는 GE에서 일하는 틈틈이 연습을 시작했고 곧 새로운 퍼터 디자인을 실험하게 됐다.
"나는 퍼터를 제조하겠다는 생각같은것은 전혀 없이 단지 내가 더 나은 게임을 할 수 있는 퍼터를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959년이 되어 그의 퍼터실험은 1A 디자인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내 퍼터에 꼭 맞는 이름을 찾았어!" 카스텐은 그의 아내에게 흥분하여 소리쳤다.
"핑~소리를 들어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지도 이에 동의하여 1959년 8월호 기사에서 "멜로디퍼터"라고 이름 붙였다. 카스텐은 레드우드시의 창고에서 그 퍼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은 카스텐과 루이제 부부가 그들이 제작한 퍼터를 진열해놓고 기념 촬영한 것이다.

1961
힐토우에 무게가 분산된 아이언

카스텐은 단조 아이언의 가운데에 홈을 파내어 무게가 힐과 토우에 분산된 아이언을 실험하고 당시 꿈의 타수인 69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69"라고 이름 지었다.

1962

존바넘 프로가 핑퍼터를 사용하여 최초로 PGA케이션 클래식에서 우승한다.

1965
World Cup 월드컵

일본에서 열린 골프월드컵에서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핑 퍼터를 쓰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다.
아직도 집 차고에서 제작하고 있는 상태지만 주문은 계속 늘어난다.

1966

966년 1월, 카스텐은 앤서퍼터를 디자인 하였다. 그 아이디어는 염감이 늘 그렇듯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레코드판 표지에 그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그 퍼터의 이름은 퍼팅의 정답이란 뜻으로 앤서(Anser)로 정해졌다.퍼터에 새기기에 이름이 너무 길어 W자는 생략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Anser는 500회 이상의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우승 퍼터가 되었다.
앤서시리즈퍼터는 최적화된 조준선, 테두리무게배분, 가운데 홈이 파진 캐버티백디자인과 저 중심설계의 특징을 가졌으며 이런 혁신들은 종전의 퍼터 디자인을 영구적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Anser피터는 연간매출 5만달러를 넘어 서며 인기를 끌었고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마, 게리 플레이어, 톰 와슨, 세베 바예스테로스 등이 Anser퍼터를 사용하며 PGA투어에서 붐을 이루게 되었다. 토우 힐 밸런스 이론C은 골프클럽 제조업계의 혁명적 컨셉으로 자리잡으며 이를 카피한 제품까지 나타나 퍼터계의 전설이 되었다.

1967
Karsten Manufacturing Corp. 칼스텐 제조회사

카스텐은 핑 클럽 제작에 전념하기 위하여 GE를 사직한다.
이어 KMC (Karsten Manufacturing Corporation)를 설립하고 현재의 위치인 아리조나주 피닉스시 북부로 사업을 옮긴다.

ANSER Patent 앤서 특허

1967년 3월 21일 앤서 특허가 등록되었다.

1969
First Major Win 첫 메이저 대회 우승

핑 앤서 퍼터가 마스터스 우승에 기여한다.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K1 아이언

핑은 K1아이언을 출시하였다. 테두리에 무게배분이 적용되었고 17-4ph스테인레스 강으로 주조되었다.